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잡스에 비하면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애플의 마케팅과 경영을 담당한 스티브잡스에게 쏠려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이 없었다면 애플이란 회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할 만큼 애플에서의 그의 역할은 잡스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그지만 사실 그에게는 엉뚱한 면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괴짜라 불리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역대급 기행 7가지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그는 수제폭탄 전문가다?
워즈니악은 12학년(17살) 때 폭탄을 제조하는 기행을 벌였습니다. 그는 음악 시간에 박자를 맞추기 위해서 사용하는 메트로놈의 소리가 꼭 시한폭탄에 사용되는 초시계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그는 메트로놈에 배터리를 대충 붙여 폭탄처럼 보이게 한 후 학교의 사물함에 넣어두게 되죠. 그가 만든 사제폭탄(?)은 사물함을 열면 째깍 소리가 더 빨리게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그는 교장실에 호출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최고 수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가 교장실에서 마주친건 상장이 아닌 경찰관 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교장선생님은 가짜폭탄을 진짜라고 생각하고 본인이 직접 폭탄(?)을 가슴에 품고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서 장렬하게(?) 전선을 뽑은 것이었습니다. 워즈니악은 그 이야기를 듣자 억눌렀던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터져버리게 되죠. 결국 그는 하루동안 철장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철장에 갖혔을 때도 그는 기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장안의 환풍기 전원선을 분리하여 철장에 연결했습니다. 뭣도 모르는 다른 죄수들은 철장을 잡고 경찰관에서 행패를 부리려다 감전을 당했다고 합니다.
2. 친구들에게 매장당할 뻔하다.
그의 기행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계속됐습니다. 당시 전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휴대형 TV전파방해기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숨긴뒤 기숙사 방에 스타트렉을 보기위해 친구들이 모여들었을때 전파방해기를 켜서 친구들을 허망하게 만드는 장난을 주로 했습니다. 이런 그의 장난은 대학 수업시간까지 이어졌지만, 이를 수상하게 여긴 그의 선배와 친구들에게 그의 전파방해기를 들켜버리게됩니다. 이후 그는 두번 다시 이 TV전파방해기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3. 대학 학과를 파산시킨 워즈
그는 대학에서 조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던 컴퓨터에 푹~ 빠져서 전산실에서 죽돌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사고를 치고 마는데요. 당시 컴퓨터는 S/W를 사용한 시간만큼 비용을 내야했는데 그는 대학교에서 배정된 1년 치 예산의 5배를 초과해서 컴퓨터를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 수천달러의 사용료가 나오자 교수는 그에게 모든 비용을 내라고 말하고, 결국 그는 조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가 돈을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금수저 빌게이츠는 집안의 탄탄한 지원으로 컴퓨터 사용료 걱정없이 마음껏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4. 세기의 장난전화
그는 허술한 미국 전화교환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블루박스라 불리는 이 장치는 AT&T의 국제전화망을 해킹할 수 있는장치로 무료로 국제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블루박스 개발에 성공하자 그의 절친이었던 스티브잡스와 함께 로마 교황청으로 장난전화를 걸죠. 그는 자신을 미국의 국무 장관인 '헨리 키신저'라고 당당하게 밝히며 교황과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시차를 고려하지 못해 로마 시간으로 새벽에 전화를 하는 바람에 교황과의 통화는 실패하게 됩니다.
72년에 개발된 블루박스는 90년대 중반 AT&T가 국제전화망을 개선하기 전까지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 경매에서 블루박스는 약 7천만원의 가격에 판매가 됐다고 합니다.
5. ARS 유머 서비스를 운영하다.
전화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워즈니악은 ARS로 폴란드 유머를 들을 수 있는 서비스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불쾌하게 여긴 한 폴란드 인이 이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우리를 놀리지마!'라고 소리쳤다고 하는데요. 이 사람은 나중에 폴란드인 연합회에서 최고의 폴란드계 미국인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명의 폴란드인이 최고의 폴란드인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하기도 한 셈입니다.
6. 최초의 학습형 통합리모컨을 발명하다.
그는 애플을 떠난 뒤 자신이 하고싶었던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것은 바로 '학습형 통합리모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리모컨을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사업에 소질이 '1'도 없었던 탓에 회사를 쫄딱 말아먹게되죠.
7. 최초의 보급형 개인컴퓨터를 만들다.
이렇게 기행을 거듭한 그였지만 그는 컴퓨터 발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최초의 보급형 컴퓨터(가격이 저렴한)인 애플1을 혼자 개발했는데요. 여러 기사에서는 스티브잡스와 함께 개발한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잡스는 애플1의 나무 케이스만 수제작했을 뿐 실제로 컴퓨터를 설계하고 제작한건 온전히 그의 몫이 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