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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 최초 디바로 불린 휘트니 휴스턴의 짧지만 화려한 인생이야기

Aedi_ 2017. 6. 28. 08:23

디바 휘트니 휴스턴

The Voice 휘트니 휴스턴

우리는 흔히 노래잘하는 여가수를 '디바(Diva)'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디바'는 오페라의 가장 인기있는 여배우인 '프리마돈나'를 부르는 용어였습니다. 따라서 대중가수를 '디바'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을 깬 주인공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휘트니 휴스턴'인데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별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자, 사람들은 그녀를 빼어난 가창력을 가진 여가수란 의미로써 '디바'라고 부르게 됩니다. 팝가수 최초로 말이죠. 거기다 그녀는 전무후무한 가창력으로 인해  'The Voice(목소리)' 별명까지 얻게됩니다.



오늘은 짧지만 화려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일생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한 데뷰


휘트니 휴스턴은 어머니와 사촌도 가스펠 가수인 뮤지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요. 이 때문에 천부적인 가창력을 어느정도는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우, 패션 모델로 활동하던 그녀는 어머니의 무대에서 코러스로 활동하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음반 기획자 '클라이브 데이비스'에 눈에 띄어 1985년 그녀의 이름을 딴 1집 'Whiteney Houston'을 발매하게됩니다.

Whiteney Houston



초반에 이 앨범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요. 나중에 그녀의 싱글앨범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1집까지 덩달이 인기를 얻는 바람에 1집은 결국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1집의 판매량은 미국에서만 1,000만장이 넘었고 세계적으로는 2,500만장이 넘게 판매되어 여자가수 1집 음반 판매량으로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1집 앨범



하지만 이런 화려한 데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하진 못했는데요. 공식으로는 그녀가 이전에 듀엣곡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람들은 그래미 어워드가 흑인을 차별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1987년 발표한 그녀의 2집 'Whitney'도 발매하자 마자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고 앨범에 수록된 곡 중 4곡이 빌보드 1위를 점령하면서 그녀는 팝여신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래미 어워드


 



그녀의 전성기


휘트니 휴스턴의 전성기는 1992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영화 '보디가드'의 OST로 사용된 'I Will Always Love You'를 발표한 때인데요. 그녀가 주인공으로 활동한 이 영화는 언제느 그렇듯 비평가들로 부터는 최악의 평가를 받지만,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면서 4,500만장 판매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영화 보디가드


이 앨범으로 인해 그녀는 아래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게 됩니다.

 

1. 역대 최다 싱글 판매

2. 역개 최다 앨범 판매

3. 역대 최다 수상기록(415회)

4. 데뷔 첫주 최다 앨범판매(100만 돌파)

5.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가수



또한, 드디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 그리고 최우수 여자가수상을 싹쓸이 하게됩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아카데미 주제가상은 영화 알라딘의 OST 'A Whole New World'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이때, 그녀는 악동 바비브라운과 결혼을 하게 되고 딸 '바비 크리스티나'를 출산하기도 합니다. 최고의 전성기에 결혼과 출산까지 해낸 그녀가 정말 대단합니다!

바비 크리스티나



영화 '보디가드'로 그녀에게 전성기가 찾아왔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마약 복용과 흡연 그리고 무리한 콘서트 일정으로 인해 조금씩 목소리를 잃어가다 결국 성대결절이 찾아오게됩니다. 이후 그녀는 전보다 굵어진 목소리와 낮아진 톤을 사용하게 되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녀의 라이벌


1990년까지 여성가수로서 독보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그녀에게도 라이벌이 등장하게 됩니다. 소니 레코드에서는 그녀의 아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머라이어 캐리'를 발굴하게 되는데요. 1990년 발매한 머리아이 캐리의 데뷔 앨범 'Mariah Carey'가 단숨에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연이어 발매한 싱글들이 모두 100만장이 넘게 판매되면서 머라이어 캐리역시 '디바'로 불리우며 휘트니 휴스턴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머라이어 캐리



같은 시기에 데뷔한 셀린디온은 데뷔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으 대 히트를 하면서 그녀 역시 '디바'를 명칭을 얻게되어 3대 디바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셀린디온은 우리나라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얻진 못했는데요. 그녀 역시 2억만장을 넘는 앨범을 판매한 어마어마한 가수이지만,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의 기록앞에서는 초라해(?)질만한 판매량이었고, 그녀는 음반 활동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셀린디온



휘트니와 머라이어 캐리는 뒤늦게 등장한 인기를 점차 얻어가던 셀린디온의 코를 확실히 눌러주기 위해서 합심해서 영화 '이집트 왕자'의 주제곡 'When You Belive'를 부르는데요. 당시 두 디바는 앨범에 누구 이름을 먼저 넣을지를 놓고 심하게 다투다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각자 녹음 했다는 루머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 음반은 빌보드 15위라는 초라한 결과를 만들었는데요. 이에 보란 듯리 셀린디옹은 타이타닉 OST로 이 두 디바를 가볍게 제압해주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타이타닉



이후 세 디바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활동을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휘트니는 이후 마약 중독으로 인해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고, 머라이어 캐리는 장르를 힙합으로 바꾸어 활동을 하게됩니다. 오직 셀린 디옹만 '디바'의 명성에 맞는 앨범과 콘서트 투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결혼생활


그녀는 1992년 악동 바비 브라운과 결혼을 하게되는데요. 이 결혼으로 그녀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많은 않았는데요. 2003년에는 가정폭력사건으로 왼쪽 뺨이 멍든 상태로 법원에 출석을 하며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는데요. 2004년에는 남편 바비 브라운과 리얼리티 쇼 'Being Bobby Brown'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쇼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실제 두 부부의 생활이 여과없이 방송되면서 그녀는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결국 두 부부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되고 결혼 14년 만인 2006년에 둘은 갈라서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재기를 위해 2009년 6집 앨범 'I Look to You'를 발매했는데요.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던 팬들의 지지로 이 앨범은 발매와 함게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게됩니다. 하지만 완전하 회복하지 못한 그녀의 목상태 때문에 그녀의 전성기를 기억하고 콘서트를 찾았단 팬들은 큰 실망을 하게 되고 호주에서는 티켓 환불 소동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I Look to You





디바의 마지막길


그녀는 2012년 2월 11일 베벌리힐스에 잇는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그래미 어워드 축하파티 도중 숨진채로 발견됐는데요. 사인은 코카인 흡입 후 익사로 밝혀져서 펜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전세계는 슬픔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는데요. 2012년 구글 검색어 1위는 '휘트니 휴스턴'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바비 크리스티나'도 마약에 빠져 살다가, 슬프게도 2015년 1월 31일 욕조에서 엄마와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상 세계 최초로 '디바'란 호칭을 얻은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짧지만 화려했던 인생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